단 2회만에 시청률 1위 자리를 빼앗겨버린 드라마 계백.천일의 약속이 김수현작가의 작품이라는 점에서만 생각해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던 결과기는 하지만 너무나도 싱거운 결과여서 좀 아쉽다. 드라마가 종영을 향해가는 상황에서 좀더 뒷심을 발휘해주기를 바랬는데 현재 계백에서 그런 것을 바라는 것이 힘든 모습이었던 거 같다. 어제 포스팅에서 얘기했듯이 계백에 주인공인 계백이 너무나도 존재감이 적고 은고와 의자의 존재감이 너무나도 커버린 상황이어서 일정이상의 인기를 기대하기가 힘든 거 같다. 은고와 의자가 보여주는 백제 내부의 갈등도 분명 재미는 있지만 이래저래 스케일이 크고 선이 굵은 내용을 바라던 사람들에게는 약간이나마 실망을 주고 이것이 드라마의 한계로 계속 작용하고 있는거 같다.
스토리 구조상 계백이 다른 인물들보다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여줄 수 있을 부분은 아마 거의 마지막 황산벌 전투 정도일 것이다. 그전까지는 황비인 은고가 주도해가는 왕실의 갈등 및 정치적 갈등에 부수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이 보여질 수밖에 없을 듯하다. 은고가 이래저래 덜 객관적인 역사서들에서지만 백제 멸망의 원인으로 지목이 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은고가 악녀다운 모습을 보이는 것은 드라마 계백이 보여주고자하는 백제 말기의 모습을 보이는데 꼭 필요할 것이다. 드라마 전반에 걸쳐서 의자와 계백을 도와 갈등구조를 풀어가는 역할을 한 은고이기에 아직까지는 시청자에게 악녀의 모습보다는 기구한 운명의 연인이고 불쌍한 여인이다 정도 생각하기가 쉬웠다. 이부분이 드디어 자신의 가문이 끝나버린 이유를 확실히 알게 되면서부터 달라지었다. 그전까지는 단순히 자신을 곤경에 처하게 했던 것이 연태연인 줄만 알고 행동했으나 모든 원흉이 의자임을 알고 배신감에 치를 떨며 은고는 본격적인 변신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은고는 여전히 동정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드라마 초기 갈등구조의 중심이었던 사택비의 카리스마를 점차 은고가 차지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택비를 몰아낸 이후 그간 보여줄 수 있던 것이 은고를 중심으로 한 계백과 의자의 애정갈등정도 였던 것을 생각하면 어제 은고가 주도하는 갈등 구조는 한층 괜찮은 모습이었다. 의자가 계백에게 질투를 하는 것까지도 하나로 묶어서 정치적 갈등으로 만들어가는 모습이었기때문에 한동안 붕떠있던 드라마가 잘맞아떨어지기 시작한 듯했다. 갈등이 단순히 개인적인 부분에서 국가적인 부분으로 나타나면서 그저 은고때문에 가슴아파하고 그러던 약간 찌질한 계백이 아닌 백제의 충신 계백장군의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고 점차 존재감을 보여줄 수가 있었다. 개인적 감정을 접고 국가를 위해서 은고와 대립하는 계백의 모습은 정말 오랫만에 주인공다운 존재감을 보여줄 수 있었다. 물론 가장 큰 존재감을 보이는 것이 여전히 은고라는 것이 좀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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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시청자 입장에서 사택비보다는 좀 더 동정을 할 수 있고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은고인데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사택비보다 더한 존재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사택비는 분명 의자와 계백, 은고와 대립을 한 악역이지만 현재 은고가 보여주는 모습과는 완벽하게 다른 모습이 하나 있었다. 개인적인 욕망때문에 그런 행동을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택비는 어디까지나 백제를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세웠고 그에 맞게 일정한 행동을 했었다. 신라인인 선화황후를 몰아내려고 했던 것이 너무나도 잔인한 모습이었지만 백제인의 백제를 만들려고 했던 사택비의 목적을 무조건적으로 비난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은고는 사택비와는 달리 백제를 위해서라는 목적보다는 다른 개인적인 복수를 중심으로 갈등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이런 부분에서 은고는 사택비보다 더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당에서 볼모로 왕자 중 한명을 데려갈려는 상황에서 은고는 연태연보다 좀더 침착했고 치밀했다. 사실 연태연도 자신의 아들인 부여태가 연회에서 실수만 하지않았다면 김춘추의 제안을 받아들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연태연이 제안을 받아들이는 순간 은고는 백제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의자에게 이러한 사실을 말하지만 실상은 그저 자신에게 복수의 대상인 연태연을 곤경에 처하도록 만들고자 한 것이다. 사택비가 과거 당의 무리한 요구를 거절하던 것과 비슷은 보이지만 그 실상이 너무나도 달랐다. 은고는 백제에 대한 계산을 전혀 하지않은 채 오직 자신의 분노를 표현하고 있을 뿐이었다. 의자앞에서 용서를 빌며 무릎을 꿇고 있던 연태연을 용서하자고 그자리에서 의자에게 은고가 말하지만 이것은 아량보다는 연태연에게 굴욕을 주고자 한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또한 자신이 원하는 대로 백제가 신라와 전면전을 치루기 위해서 귀족들을 포섭하는 모습은 은고를 한층 더 무섭게 만들었다. 임자를 통해서 자신이 황비가 된 이후 꾸준히 귀족들의 약점들을 모았던 은고는 무척이나 치밀했고 무서웠다. 정공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라도 자신이 이루고자하는 목적을 달성할려는 은고는 사택비보다 더한 아니 근본부터가 다른 존재였다. 사택비가 힘을 가질 수 있던 것은 귀족의 지지인데 그 지지는 사택비가 가지고 있던 명분이었다. 하지만 은고는 마찬가지로 귀족들이 자신을 지지하도록 하여 힘을 만드는데 그것은 명분이 아니라 그들이 가지고 있는 약점을 통해서 였다. 사택비보다 은고가 더 악락하고 더 무서운 이유가 바로 이러한 명분이 없다는 점이다.
가장 하이라이트였던 것은 마지막 장면에서 계백에게 자신이 왜 이러는 지를 설명할때였다. 계백이 다시 자신을 되찾을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은고의 모습은 언뜻 생각하면 무척이나 감성적이고 애절했다. 하지만 과연 일국의 비가 할 생각은 분명 아니었다. 원하던 혼인이 아니었고 그 혼인조차 계획된 것이었기는 했지만 어쨌든 은고는 의자의 비이다. 그런 상황에서 여전히 계백만을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이고 그때문에 나라를 위기에 처하게 할려는 모습은 막장극에나 나올법한 불륜녀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계백에게는 계백을 위해서라고 햇지만 단순히 그렇게 볼 수 없는 것이 은고는 그보다 의자에 대한 복수를 더 크게 생각할 듯하다. 그 복수에 계백에 대한 애정은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것일 뿐이었다. 예고에서는 이제 후사문제에 본격적으로 뛰어드는 듯한데 과거 사택비가 교기를 태자로 만들기 위해서 했던 것과 비슷한 모습을 보여줄 듯하다. 근데 사택비는 교기가 아직 왕의 자질이 아니라고 태자책봉을 미루었던 것과 달리 은고는 자신이 가진 야망과 복수를 위해서 그런 객관적인 판단을 하지는 않을 거 같다. 이런 은고를 소름돋게 표현하고 있는 송지효에게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이런 커다란 갈등구조를 빼고 어제 계백에서는 또 한가지 중요한 장면이 있던 거 같다. 초영과 계백의 애매한 관계가 약간이나마 나왔는데 계백의 부인이 누구가 되느냐와 직결되는 문제이기때문에 나름 의미를 부여할만했다. 검에게 장가를 갔다는 계백과 그말에 그냥 자신도 검에게 시집가야겠다고 혼잣말하는 초영의 모습은 계백과 은고가 보여주는 애틋함은 없더라도 어느정도 계속 기대를 해봐도 되지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여전히 초영이 계백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셈인데 과연 어떻게 될지가 무척이나 궁금하다. 비록 계백은 초영에게 신뢰 그이상의 감정을 가지고 있지않는 듯해서 과연 초영이 계백의 사랑을 얻을 수 있을 지는 치열해지는 백제 정계의 갈등을 보다 지친 시청자들이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지점이될 듯하다. 팽팽하던 드라마를 잠시나마 누그러뜨려주는 부분일텐데 드라마 제목인 계백인 만큼 이부분도 사실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뭐 드라마 전체로 봤을때 어제 가장 중요한 장면은 어쨌든 사택비보다 더한 존재로 변하는 은고의 모습이었다. 은고가 보여주는 그 악독함이 한동안 드라마를 재밌게 이끌어 줄 듯한데 이를 통해서 다시 시청률이 반등했으면 해본다. 끝이 얼마 안남았으니 유종의 미를 거두길 바라면서 이만 글을 마친다.